[포토뉴스](촛불1주년) "화려한 휴가, 29년 후"

[啞雲사족칼럼] 이성을 상실한 집단이 걸어갈 길은?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런 일을 눈도 깜짝안하고 서슴없이 자행할 수가 있을까요?

 

* 분명 놀러온 가족인데, 초딩 딸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 연행?

* 현장취재중인 외신기자 헬멧에 통신사 마크가 선명함에도 연행?

* 어머니와 함께 나와 광장에서 촛불 든 중학생을 뒤에서 덮쳐 연행?

*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고 말해도 중국에서 관광온 학생을 무작정 연행?

* 인도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음에도 범죄사실 미란다 원칙도 고지없이 연행?

*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하겠다, 무슨죄로 잡아가냐고 물어도 막무가내로 연행?

* 여성을 연행하면서도 여경없이 남자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 막무가내로 연행?

* 명동이 무법천지가 아닌 공권력의 떼법 광란 파티장으로 변한 압법지로?

 

2009년 5월 2일 심야의 명동은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워 29년전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선 1980년  빛고을의 '화려한 휴가'의 속편인 '2009년 화끈한 휴가''가 실제 촬영중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급기야....집회신고 대상도 아닌

<노동절 및 촛불 1주년 경찰 과잉진압 규탄 기자회견’>하는 6명의 무고한 시민도 연행?

이들은 더이상 정권이길 포기하고 국민을 모조리 체포하고 구금의 대상으로만 노려보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집단입니다. 미친개들이라면 이제 복날이 아닐지라도 잡아야 겠지요?

 

<마르틴 뇌묄러의 시가 생각납니다.>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의 시]

[시] 그들이 처음 왔을때...(First they came...)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

When they came for me,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out.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

(14 January 18926 March 1984) was a Protestant pastor and social activist.

자료출처 : http://en.wikiquote.org/wiki/Martin_Niem%C3%B6ller

 

[독일어 판]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te.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 줄 누구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그외의 다양한 판본]

When the Nazis came for the communists,
I remained silent;
I was not a communist.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When they locked up the social democrats,
I remained silent;
I was not a social democrat.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W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I did not speak out;
I was not a trade unionist.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When they came for the Jews,
I remained silent;
I wasn't a Jew.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When they came for me,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out.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 줄 누구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Else and Martin Niemöller in 1961.

Martin Niemöller, Linus Pauling and Sybil Niemöller in 1983.

자료출처 : http://www.spartacus.schoolnet.co.uk/GERniemoller.htm

 

"화려한 휴가, 29년 후"

2009년 05월 04일 (월) | 조성봉 기자

▲ 1일 오후 지하철 종로 3가역 구내까지 들어온 경찰이 7번출구로 나가려는 노동자들을 진압봉과 캡사이신(최루액)으로 진압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1일 저녁 명동 밀레오레 앞 도로에서 한 대학생이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한 여대생이 "제 친구(중국 교환학생)가 전경들에게 잡혀갔어요! 그 사람 한국말 하나도 못해요. 제발 풀어주세요"라며 울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2일 경찰은 연행되는 시민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향해 캡사이신을 조준해서 쏘는 등 노골적으로 취재방해를 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로이터통신 이재원 기자 모습. ⓒ오마이뉴스 최윤석 기자

▲ 한겨레 이정아 기자 모습. ⓒ오마이뉴스 제공

▲ 경찰이 커널뉴스 생중계팀을 연행하려는 순간 기자와 시민 대여섯명이 경찰에 밀려 넘어지자 커널뉴스 기자가 경찰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경찰은 촛불을 든 사람, 마스크를 쓴 사람은 불법행위의 여부를 막론하고 무차별 연행했다. 엄마와 함께 나온 한 중학생이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뒤에서 덮친 경찰에 의해 연행되려하자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미디어오늘-이치열 기자 truth710@

▲ 명동 일대 곳곳에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라며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휩싸인 일반시민들이 몸을 피하고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경찰은 4일 경찰청(서대문구 미근동) 앞에서 ‘노동절 및 촛불 1주년 경찰 과잉진압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참가자 6명을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혐의를 적용해 연행했다.ⓒ 통일뉴스 제공
 
▲ 11시 5분경 경찰은 기자회견이 시작하기도 전에 병력 100명을 투입해 경찰청 입구에서 20미터 떨어진 민원실 앞까지 참가자들을 밀어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결국 기자회견은 예정시간을 50분 넘겨 경찰청 정문 입구에서 15미터 떨어진 인도에서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 진행됐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경찰, 경찰 비판하는 기자회견 참가자 연행ⓒ 통일뉴스 제공


기자회견 도중 연행된 참가자들이 호송될 허탈한 표정을 짓고 경찰차에 앉아있다.ⓒ 통일뉴스 제공

마이 블로그  http://blog.naver.com/yalee1212  펌자유 출처공개 필수

by 벙어리구름 | 2009/05/04 23:04 | 아운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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